미디어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나 단순한 M&A 수치 분석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WBD 인수전에 참전했던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의도와 비전을 이해하려면, 불과 1년전에 스카이댄스가 왜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인수하려고 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파라마운트의 100년사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냅킨 위의 낙서가 일군 제국, 그리고 '수직계열화'의 양날의 검
24개의 별과 냅킨 위의 설산할리우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의 상징인 거대한 설산 로고는 1914년 윌리엄 워즈워스 호드킨슨이 냅킨 위에 그린 낙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타주의 벤 로몬드 산에서 영감을 얻은 이 그림은 당시 전속 계약을 맺은 24명의 스타를 상징하는 별들과 함께 '영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돌프 주커의 냉혹한 설계: 수직계열화와 블록 부킹창립자 아돌프 주커는 제작, 배급, 상영을 하나로 묶는 수직계열화를 최초로 완성하며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대작 한 편에 B급 영화 수십 편을 끼워 파는 '블록 부킹(Block Booking)'은 흥행의 불확실성을 '예측 가능한 수익'으로 치환한 혁명적인, 동시에 냉혹한 비즈니스 공식이었습니다.
#2. 독점의 종말과 TV의 습격, 그리고 '기름쟁이'의 구원
파라마운트 판결-안전판의 상실1948년 미 대법원의 '파라마운트 판결'은 제국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제작과 상영의 분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던 현금 흐름을 끊어놓았고, 영화 제작은 거대한 리스크의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새로운 문물인 TV에 맞서 '비스타비전' 으로 승부수를 던졌으나, 경제성을 앞세운 경쟁사에 표준의 자리도 내주어야 했습니다.
복합기업의 시대: M&A 귀재 블루돈의 등장1960년대, 파산 위기에 처한 파라마운트를 알아본 이는 '매드 오스트리안' 찰스 블루돈이었습니다. 영화인들이 '기름쟁이'라 비하하던 그는 파라마운트의 부동산 가치와 라이브러리의 잠재력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스타트렉>, <미션 임파서블> 같은 전설적 IP를 확보하며 '뉴 할리우드' 부활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3. 승자의 저주와 디지털의 심연: 왜 11조 원이었는가?
레드스톤의 패착과 빚더미 제국1994년 섬너 레드스톤은 100억 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파라마운트를 인수했지만, '승자의 저주'가 시작됩니다. 과도한 부채와 2006년 단행된 바이아컴-CBS의 분리는 훗날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규모의 경제' 전쟁에서 스스로 무기를 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가치의 역설: 100년 스튜디오의 헐값 매각데이비드 엘리슨이 파라마운트를 약 11조 원(부채 제외)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냉정했습니다. 시장은 파라마운트의 수익 구조가 가치가 하락 중인 케이블 채널에 쏠려 있다는 점, 그리고 마블이나 DC에 비해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께가 얇다는 점을 들어 가격표를 낮게 책정했습니다.
당시 소니와 사모펀드도 파라마운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인수전에서 스카이댄스가 이긴거죠? 인수 방법이 달랐거든요. 인수방법은 원문을 보세요
#4. 데이비드 엘리슨의 도박: 할리우드에 실리콘밸리를 이식하다
지배구조의 틈새를 노린 우회 전략엘리슨은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직접 사는 대신, 의결권의 77%를 가진 샤리 레드스톤의 개인 지주회사(NAI)를 공략하는 영리함을 보였습니다. 이는 소니나 사모펀드 같은 거대 자본이 사용할 수 없었던, 기업의 특성과 지배구조를 꿰뚫어 본 전략이었습니다.
테크 플랫폼으로의 재정의엘리슨은 뉴 파라마운트를 "할리우드의 창의성을 실리콘밸리의 운영 엔진으로 돌리는 회사"로 정의합니다. 그리곤 조직 재정비를 예고했습니다. 그의 구상은 이러합니다. 우선 오라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인사, 재무, 법무를 단일 지원 센터로 통합하여 연간 20억 달러를 절감합니다. 영화와 TV 부서의 칸막이를 없애고, 하나의 IP가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동시에 뻗어 나가는 구조를 구축합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제작자의 감이 아닌, AI 분석을 통해 글로벌 잠재력과 리스크를 시뮬레이션합니다.
[다음 호 예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스카이댄스가 파라마운트의 모회사인 NIA를 인수하기로 계약한 날짜가 2024년 7월 7일입니다. 그 뒤 약 1년이 지난 2025년 7월 25일에 FCC가 최종 승인을 내림으로써 인수가 공식적으로 확정이 됩니다.
그런데 WBD 인수전에 참전한 것이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가 적대적 인수를 내건 날짜가 2025년 12월입니다. 그러니까 파라마운트를 인수 확정된 후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WBD란 거함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다음호에는 바로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를 향한 집요한 시선을 다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