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남은 흔적 기관들
1) 언어의 관성이 만든 기묘한 풍경
우리는 여전히 납(鉛)이 없는 '연필'로 글을 쓰고, LED 조명을 보며 '네온사인'이라 부릅니다. 넷플릭스 영화가 공개될 때 물리적인 필름 통이 없음에도 '개봉'이라는 단어를 쓰고, 디지털 메모리에 기록하면서도 '크랭크 인'을 외치죠. 이러한 언어적 관성은 대개 무해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친숙한 과거의 옷으로 감싸 안는 인류의 지혜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흔적 기관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방패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2) 3%의 물리적 실체, 97%의 비즈니스 현실
지상파의 본질은 전파의 직접 수신을 통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안테나로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3% 내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7%는 유료방송망에 비용을 지불하고 지상파를 소비합니다. 기술적 전송망으로서의 지상파는 이미 수명이 다해가고 있으며, 방송사 내부 예산에서 송신망 유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경미합니다. 이제 지상파라는 용어는 기술적 실체가 아닌, 과거 '황금 채널'을 점유했던 레거시 사업자를 지칭하는 관용구일 뿐입니다.
3) '포템킨 마을'이 된 보편적 시청권
생존생존의 위기 앞에서 지상파는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낡은 외투를 부적처럼 꺼내 듭니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 중계권이나 규제 방어 국면마다 "국민 누구나 무료로 볼 권리"를 주장하지만, 실상은 씁쓸합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 사업자로부터 재송신료(CPS)를 받는 철저한 B2B 상업 모델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무료 보편적 수호자'라는 파사드를 세워둔 셈이니까요. 겉은 번듯하지만 문을 열면 텅 빈 공터인 '포템킨 마을'과 같지 않을까요?
4) 흔적 기관을 소환하는 정치는 멈춰야
플랫폼의 국경이 무너진 시대에, 망가진 안테나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세운 포템킨 마을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보편적 시청권의 핵심은 특정 플랫폼(지상파)의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누구든 대세감을 확보할 수 있는 공동 중계권과 보편적 편성권에 있어야 합니다. 본질이 사라진 이름표가 혁신의 문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